[오마이뉴스] 뮤지컬과 소설의 중간 지점? 신선한 공연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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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서정준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조금 색다른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어단비 작가의 환상소설 <달가림>을 원작으로 만든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숲 바람 그리고 달>은 우연히 숲에게 그림자를 뺏긴 '효주'와 그를 돕는 '무영'이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효주'는 5일 안에 자신의 그림자를 찾지 못하면 숲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위기를 맞게 되지만, 표정을 가르쳐달라는 이상한 제안을 해오는 '무영'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림자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두 사람의 로맨스는 관객들의 감성을 촉촉히 적셨다. '효주' 역에는 배우 한지은, '무영' 역에는 배우 문장원, '내레이션'에 배우 차수린이 출연했고 유독현, 김동우, 권제인, 김지혜 배우가 함께 호흡을 맞춰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공연이 열린 이음센터 5층 이음아트홀은 보조석까지 꽉 채워야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모여 높은 관심을 보였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추태영 연출은 우선 "너무 짧은 시간, 급하게 진행된 공연이라 많이 걱정했는데 전달하고 싶은 정서를 잘 전달하고 마무리돼 참 좋았다. 감사한 후기들도 많이 들어왔고 심지어 근래에 봤던 공연 중 최고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뿌듯했다. 쉽게 모이기 힘든, 각 분야의 뛰어난 배우들이 함께 해준 데다가 가이드대로 척척 손발을 맞춰준 모든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일지라도 가능했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작품이 무사히 공연된 소감을 전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서정준

원작 소설 <달가림>의 담당 편집자이자 <숲 바람 그리고 달>의 각색을 맡은 김지영 프로듀서는 "작품의 배경이 여름이기도 해서, '한여름밤의 꿈'처럼 로맨틱한 장소에 모여 앉아 좋은 음악과 함께 조곤조곤 작품을 낭독해보는 행사를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참여해주시겠다는 배우님들과 스태프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판이 커져 극의 형식을 갖춘 입체 낭독극으로 발전하게 됐다. 훌륭한 배우님들이 작가님과 작품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 권의 소설이 입체낭독극이 된 계기를 설명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서정준

무대 예술은 영상 기술이 발전되기 시작하며 그 어느때보다 과감한 확장을 꾀하고 있다. 국내 창작 뮤지컬 중 <벤허>, <웃는 남자>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풀 CG가 아니어도 군데 군데 영화같은 시도를 더해 매력적인 무대예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사례다. 조금 더 큰 규모를 보자면 브로드웨이의 <겨울왕국> 같은 경우 CG와 실제 무대가 가지는 경계선의 틈을 상당히 메워냈다.


그러나 수십억의 예산을 쏟아붓는 '영화 같은' 공연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의 예산에서 실효성을 거두는 형태의 공연들도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숲 바람 그리고 달> 역시 소품을 이용해 음성 변조를 한다거나, 작은 전구들로 표현하는 별빛 등 작은 아이디어로 극을 감쌌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대학로에서 정식 공연 이전에 많이 시도하는 이른바 '리딩 공연'에서 한발 더 나아간 형태로 보였다. '리딩 공연'이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입체낭독극은 약간의 연출을 더해 정식공연 못지 않게 풍부한 감정과 서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서정준

이는 마치 오는 9월 1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는 HJ컬처 낭독뮤지컬 시리즈와도 비슷한 맥락이 있었다. HJ컬처 낭독뮤지컬 시리즈는 기존에 대극장에서 공연됐던 <마리아 마리아>, <파리넬리>, <살리에르>와 신작 <어린왕자>를 낭독극 형태로 만든 작품이다. 많은 출연 인원을 소규모로 줄이고 나레이션과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극을 다이제스트했다. 제9회 더뮤지컬어워즈 3관왕(파리넬리)을 거두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상업적 논리로 인해 만나기 어려워진 공연들이 핵심 서사와 넘버를 가다듬어 낭독뮤지컬이란 형태로 부활한 셈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장르라고 생각했던 소설과 뮤지컬은 하나의 지점에서 마주하게 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국 좋은 콘텐츠에 있었다. 우리 공연계가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들을 계속해서 양성해야할 이유기도 하다.


 HJ 낭독뮤지컬 시리즈 <마리아 마리아> 중 커튼콜 장면. 무대를 간소화하되 소품 활용과 나레이션, 배우들의 연기를 적절하게 결합했다.

▲HJ 낭독뮤지컬 시리즈 <마리아 마리아> 중 커튼콜 장면. 무대를 간소화하되 소품 활용과 나레이션, 배우들의 연기를 적절하게 결합했다.ⓒ 서정준

한편, 출판사 CABINET의 조민욱 기획팀장은 "감격스러웠다. 캐비넷이 추구하는 스토리의 확장을 관객들과 함께 즐겼기 때문이다. 장르소설을 시작으로 영화, 드라마, 공연, 만화, 게임으로의 확장을 꾀하는 캐비넷 역사에 있어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 같다. <달가림>이 가진 공연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낸 셈"이라며 이번 입체낭독극을 높이 평가했다.


조 팀장은 이어 "평소 외부 공연 창작집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팀원과 극작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팀원이 합심해 대단한 시너지를 냈다. 팀원들이 연출과 극작을 자체적으로 소화해 관객들에게 큰 만족을 주는 공연을 완성해냈다. <달가림>을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하려 한 제게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은 신선하면서 납득할 수 있는 시도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신비한 숲은 배우, 무대 디자인, 조명, 음향 그리고 관람객의 상상력을 통해 얼마든지 환상적인 공간으로 연출될 수 있으며, '효주'와 '무영'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감정선은 무대 연기로 보여줄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 그것이 증명되는 현장을 지켜봤다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앞으로 <달가림>의 정식 뮤지컬 제작을 위해 열심히 뛰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1시간이 넘는 무대극을 성공적으로 제작해낸 만큼 앞으로 스토리 발굴 및 개발 시, 다양한 형태의 무대극 제작을 염두에 두고 활발한 확장을 시도할 것이다"라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무대 공연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추태영 연출과의 일문일답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입체낭독극 <숲 바람 그리고 달>에서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서정준

<숲 바람 그리고 달>을 연출한 추태영 연출에게 작품의 특징과 어려움에 관해 물어봤다. 우선 추 연출은 "표현의 절제와 표현의 욕심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작품을 만들며 어려웠던 과정에 대해 밝혔다.


그는 "로맨스라는 장르적 특성상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물리적으로 맞붙어야 정서가 전달되는데 입체낭독극이라는 형식상 실연극처럼 적극적으로 동선을 짜기 힘들다. 이미지적 표현과 실연을 적절히 섞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재미있는 연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원작과는 달리 현재 '효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해 나레이터의 역할을 현재 효주로 정하고 과거 효주를 따로 만들어서 진행했던 것, 보면대에 전구를 연결해 별빛을 표현했던 장면, 큐브로 웅덩이를 만들며 교감하는 장면, 물 속에서 수괴와의 전투씬에서 암전시키고 소리로만 정서를 전달했던 장면 등 입체낭독극의 형식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것 같다. 정서를 증폭하기 위해 음악을 끊임없이 사용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런 것들을 구현하기 위한 과정이 힘들었지만 신선한 표현 방식들이 많이 나와서 즐거웠다"며 음악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입체낭독'극을 올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저희 낭독극만의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면 읽어주기보다는 보여주기, 정적이기 보다는 동적이었다는 점이다. 끊이지 않는 음악 위에 공연용 핀마이크를 사용해 대사를 또렷이 전달하고 소품과 음향, 조명 등의 테크를 소형 뮤지컬 공연만큼 다채롭게 사용했다. 배우들이 펼치는 실연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낭독극 특유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동시에 시각적 몰입감을 높이는 것을 의도했다. 이 입체낭독극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공연 콘텐츠기를 바랬다"고 <숲 바람 그리고 달>의 특징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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