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현대 소외 그린 미스터리 소설 ‘고시원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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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지난 9일 종로 고시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했다. 최근 5년 동안 발생한 고시원 화재는 360여 건, 38명 이상 숨지거나 다쳤다. 2009년 개정된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기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고시원은 스프링클러 등 안전설비가 취약해 사실상 화재에 무방비상태다. 오래된 건물, 좁은 복도, 한 평짜리 공간. 전건우 소설가의 <고시원 기담>(CABINET.2018) 속 고문고시원도 다르지 않다.

‘고문고시원은 수명이 다한 초식동물처럼 보인다. 투박하고 무뚝뚝한 회색 벽에는 주름처럼 균열이 자글자글하다. 처음 지어졌을 때만 해도 파격적이었을 빨간색 창틀은 군데군데 칠이 벗어져 을씨년스러움을 뿜어낸다.’(본문 중)

세월이 흐르고 낙후된 변두리 시장통에 자리한 고문고시원 풍경이다. 거주자들은 단 여덟 명,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른바 사회적 약자로 고시생, 취준생, 외국인 노동자, 매일 죽는 남자, 가출 소녀 등이다. 이들이 겪는 기기묘묘한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구성해 추리, 스릴러, 무협, SF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낸다. 특히 고시원의 적막한 환경을 상세하게 그려낸 대목은 현대사회를 고시원으로 축소해 ‘소외’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고문고시원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살아간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동선을 짜고 소리를 통해 다른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다. 가끔 누군가와 예기치 않게 마주칠 때면 서로 유령이라도 몬 듯 ’헉‘하고 놀라고는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렇다. 고문고시원의 잔류민들은 모두 유령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한 평짜리 삶을 이어가는 존재. 나도 고문고시원에서 유령이 되었다.’ (본문 중, 일부 수정)

작가도 취준생 시절 고시원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는 기술을 배웠다는 그는 고시원도 사람 사는 곳이라며 절망만 가득한 곳은 아니라고 전한다. 그의 말처럼 작품 속 고시원 풍경은 삭막한 현실과 다르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은 연대를 통해 세상에 맞서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들도 저마다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존재와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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