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라비다 행성에 찾아온 행성감기.
그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 발생!
이 행성적 재난을 해결할 자 누구인가!
라비다 행성에서는 본래 농작물이 저절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라비다 행성이 행성감기에 걸려버렸고, 농작물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된다. 설익은 농작물, 딱딱해진 농작물 등으로 인해 라비다 행성에는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 라비다인들은 식량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하나의 육체를 여럿이서 나눠 쓰기로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다른 대책이 필요해졌다.
라비다 행성의 농업사령관인 띵은 오랫동안 지구의 TV프로그램을 시청해왔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농사의 전설>이다. 양동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띵은 이들에게 농사 비법을 전수받아, 라비다 행성의 식량난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라비다 행성으로 지구인들을 모셔, 아니 납.치.해왔는데, 이게 웬일. 지구인들은 자신들은 배우이지 농업전문가가 아니라고 한다. 연기만 했을 뿐 실제 농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지구인들. 띵은 난감하기만 하다.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자된 만큼, 지구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무조건 농사를 성공시켜야만 한다.
난감한 건 지구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구인들은 띵이 자신들을 찾아왔을 때, ‘당연히’ 몰래카메라 예능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시청률 하락으로 드라마 폐지설이 나돌던 중에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방문이라니! 그저 반갑기만 했고, 여기서 자신들을 홍보하면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예능이 아닌 ‘Real’이라니... 황당하고 두렵고 어이없다. 심지어 난생 처음 보는 행성에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식물 농사를 성공시켜야만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사에 나서지만 계속 실패할 뿐이다. 그럴수록 라비다인들의 경계와 의심도 심해져 간다. 답답함과 분노가 폭발할 즈음, <농사의 전설>의 주인공인 조세열이 한 가지 방법을 찾는다.
과연 라비다 행성의 식량 부족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지구인과 라비다인, 또 다른 행성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 지은이
이 선
할란 엘리슨에게 환호하며,
우주만화를 쓰고 싶고,
코니 윌리스가 되고 싶고,
알베르 카뮈를 사랑하며
박완서를 존경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열이 나는 날에는 마의 산을 읽는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013
chapter 1. 농사의 전설 ---- 017
chapter 2. (소군) 농사 ---- 097
chapter 3. 데리다 행성 ---- 215
chapter 4. 고노게나오 농사 - 243
chapter 5. 농사쇼-------- 347
에필로그 : 우쿠부지의 여름 -- 370
작가의 말 -------------- 374
추천의 글 -------------- 377
▪ 출판사 서평
사랑스럽고 유쾌한 우주풍자극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처음 작품을 접할 때는 당황스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 흐르듯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작가 특유의 개그코드와 문체에 마음이 동한다. 그때부터는 작품에 훨씬 더 몰입하게 돼 ‘이것의 의미는 뭐지?’, ‘이런 사회문제를 풍자한 것은 없나?’ 라며 찾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작품 곳곳에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가득 묻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따뜻하다. 그들을 결코 동정하지 않으며,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존중하고 있다. 서로에게 편견 없이 대하는 캐릭터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대하는 작가를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하고, 현재의 행복은 물론 미래의 행복까지 바라는 작가의 간절함이 새삼 낯설게도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애정 어린 응원을 받은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의 메인 배경인 라비다 행성은 신비롭고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와는 다른 모습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라비다 행성 안으로 들어가 보면 지구와 다를 것 없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식량 문제, 육식과 채식, 세대 간 갈등, 미디어의 역할,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쟁 등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지구의 현대 사회와 꼭 닮았다.
이러한 라비다 행성의 갈등을 지구인들이 해결한다. 다른 행성으로 납치된 문제투성이 지구인들이 의도를 가지고, 혹은 우연히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 역설적 구조에서 작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풀어낸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기존 가치관을 강화시켜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가치관과 정반대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흘러가듯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떠한 방향으로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매끄럽게 풀어내, 단지 이 작품에서는 이러하니 그것을 즐기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뿐이다.
듣도 보도 못한 쁘띠 SF의 등장!
작가 이선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모던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에서 그 재능을 무한히 펼친 결과 고급스러우면서도 귀여운 SF블랙코미디가 탄생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소하게 벌이는 에피소드, 신비로운 생명체의 귀여운 행동, 뻔뻔하게 느껴질 만큼 자유로운 언어유희, 은유를 바탕으로 한 세밀하고 입체적인 설정과 이야기, 무심하게 아닌 척 하면서 촘촘하게 깔아둔 복선 등 이 작품은 일반적인 SF소설과 다른 결을 지녔다. 정교한 과학적 지식이나 새로운 과학적 상상력 및 신문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등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무척 낯설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장르를 SF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추천할 수 있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SF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고, SF장르에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이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SF시장을 확대시키는 것까지 도전할 만하다.
또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의 공간적 배경인 베델스크 행성계는 꽤 탄탄하고 흥미롭게 구축되어 있어 이를 활용한 연작 시리즈도 기대할 수 있다. 이 작품 이후에 라비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라비다 행성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간 지구인의 이야기, 베델스크 행성계의 각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 독자들도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 보여주는 세계는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지구인들이 라비다 행성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SF시장을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된다.
■ 책 속으로
할머니는 최희지를 등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아직 물기가 덜 마른 차가운 등에 할머니의 폭신한 배를 가져다 대자, 온몸에 온기가 서서히 퍼졌다.
“뭐예요. 왜 안아?”
희지는 할머니를 밀어냈다.
“얘야. 어디를 헤매다 이제야 나를 찾아왔어.”
기댜 할머니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희지는 그 말 한마디에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녀를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친손녀처럼 안아 주었다. 라비다 행성에서는 손님이 오면 마치 집 나갔던 식구가 돌아온 것처럼 따뜻하게 맞아 주는 풍습이 있었다. - p. 116
희지는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지구의 사람들은 눈으로도 다른 사람을 때릴 수가 있었다. 뾰로통한 입술로도 날카롭게 찌를 수 있었다. 희지는 왜 본인이 이혼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 p. 117
고백하건대, 사실 지구인들은 미치게 귀엽다. 밤엔 대부분 다 잔다. 왜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안 졸려도 밤이 되면, 두 눈을 꼭 감고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잠이 오기를 기다린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가만히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두근두근, 심장이 두근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아침이 되면 일어난다. 졸려도 굳이 기어이 일어나서 졸음이 남아 있는 눈을 손등으로 비빈다. 지구인들은 정말 다 귀엽다. - 신원 미상인의 <지구 보고서 개정안> 17메장 98미먀절- - p. 118
“언니. 난 농사에 성공하면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것에 기대도 안 해.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선 농사는 실패할 것이 분명하지 않아? 전부 다 세월아, 네월아가 아니라 두월아 이러고 앉아 있잖아.”
김미는 말했다.
“다 좋은데 두월이는 또 뭐니?”
“몰라. 세월보다 느리면 두월이지 뭐. 지금 시간이 세월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두월처럼 흘러가잖수.” - p. 165
“당신의 작은 위 안에 얼마나 큰 슬픔이 들어 있는 건가요?”
도로마디슈가 물었다.
“슬픔은 위가 아니고 마음에 있어요.”
재이니는 나직이 말했다.
“슬픔이 왜 거기 있어요? 마음은 먹는 겁니다.” - p. 287
▪ 추천평
한국형 뉴웨이브SF의 실험
‘커트 보니것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이런 소설을 썼을까? 2차 세계대전의 아픈 경험들이 쌓이기 전의 청년 보니것이 그 특유의 블랙유머 감각으로 21세기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를 재료 삼아 SF를 쓴다면 이 작품과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그와 함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화도 자꾸 떠올랐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일독하는 일은 이제껏 접해 왔던 한국산 SF들과는 여러 면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농업의 위기를 맞은 외계인들이 대책 회의 끝에 지구인 ‘농사 전문가’들을 데려오기로 한다. 이미 그들은 지구의 TV를 몰래 즐기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사실 ‘전원 드라마’였다.
제각기 개성 충만한 외계인과 지구인 캐릭터들(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들 각각의 환경이나 히스토리와 유기적으로 얽힌 다층적인 스토리 전개(설정의 디테일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절하게 배어들어 있는 풍자와 유머 코드(일단 적응되면 흥미진진하다), 씨줄과 날줄로 교직되는 정교한 플롯(복선 찾는 재미가 있다) 등등. 이 작품의 미덕은 꼽으면 꼽을수록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들이 융합되어 발산하는 시너지도 독특한 미학을 이룬다.
제일 먼저 돋보이는 것은 작품의 주인공인 라비다인들과 그들의 행성, 그들의 생태에 대한 설정이다. 작가가 가장 공들인 부분으로 짐작되는데, 사실 SF라면 흔히 기대하게 되는 과학적 정합성을 애초부터 배제하고 철저하게 은유와 풍자로 승부를 건 듯한 태도라서 자칫 SF애호가에 따라서 호오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장르의 드넓은 스펙트럼을 즐기려는 독자라면 충분히 즐기고도 남을 만큼 세심하고 정교하다. 최소한 그 노력만큼은 객관적으로 일정한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계 생태의 설정에서 교과서적인 치밀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이라면 흔히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떠올리게 된다. 비록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그런 고전의 품격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품 자체의 내적 토대가 되는 블랙유머와 풍자의 정서에 충분히 값할 만한 수준에는 오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성취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따금 등장하는 우리말 언어유희(pun)가 꽤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타율이 준수한 편이라서 작가의 이 분야 센스 내공은 단기간에 쌓인 것이 아닌 듯하다. 이를테면 멍한 아름다움을 ‘멍미’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말 속어가 갖는 중의적 페이소스를 적절하게 구사한 재미있는 예이다.
서구SF에서는 1960년대 즈음부터 ‘뉴웨이브SF’라고 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그전까지는 과학기술적 묘사의 엄정함을 강조하는 하드SF적 정서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뉴웨이브SF는 마치 그에 반기를 드는 듯한 형이상학적, 추상적 관념의 묘사가 특징이었다. 베트남전쟁 반대와 히피 운동 등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짚는 분석과 더불어 기존 SF 자체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실험적, 파격적인 시도의 성격도 컸다. SF를 ‘Speculative Fiction(사색소설)’이라고 새롭게 풀이하자는 제안이 꽤 유효했을 정도였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읽으면서 문득 한국형 뉴웨이브SF라면 이와 비슷한 느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와 연관 지어 흥미롭게 분석해볼 만한 텍스트로 꼽힐 자격이 있다.
그동안 여러 SF공모전 심사를 맡아 오면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과 유사한 스타일의 경쾌하고 신랄한 블랙 유머 SF들을 더러 접해 왔지만, 대부분 아쉬움이 컸었다. 게다가 그런 스타일을 중단편도 아닌 장편 스케일에 걸맞게 구사한 경우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과 같은 작품이 더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SF의 창작 역량이 더 넓고 깊어질 것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화씨 451>, <라마와의 랑데뷰> 번역
▪ 책 소개
라비다 행성에 찾아온 행성감기.
그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 발생!
이 행성적 재난을 해결할 자 누구인가!
라비다 행성에서는 본래 농작물이 저절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라비다 행성이 행성감기에 걸려버렸고, 농작물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된다. 설익은 농작물, 딱딱해진 농작물 등으로 인해 라비다 행성에는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 라비다인들은 식량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하나의 육체를 여럿이서 나눠 쓰기로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다른 대책이 필요해졌다.
라비다 행성의 농업사령관인 띵은 오랫동안 지구의 TV프로그램을 시청해왔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농사의 전설>이다. 양동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띵은 이들에게 농사 비법을 전수받아, 라비다 행성의 식량난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라비다 행성으로 지구인들을 모셔, 아니 납.치.해왔는데, 이게 웬일. 지구인들은 자신들은 배우이지 농업전문가가 아니라고 한다. 연기만 했을 뿐 실제 농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지구인들. 띵은 난감하기만 하다.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자된 만큼, 지구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무조건 농사를 성공시켜야만 한다.
난감한 건 지구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구인들은 띵이 자신들을 찾아왔을 때, ‘당연히’ 몰래카메라 예능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시청률 하락으로 드라마 폐지설이 나돌던 중에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방문이라니! 그저 반갑기만 했고, 여기서 자신들을 홍보하면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예능이 아닌 ‘Real’이라니... 황당하고 두렵고 어이없다. 심지어 난생 처음 보는 행성에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식물 농사를 성공시켜야만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사에 나서지만 계속 실패할 뿐이다. 그럴수록 라비다인들의 경계와 의심도 심해져 간다. 답답함과 분노가 폭발할 즈음, <농사의 전설>의 주인공인 조세열이 한 가지 방법을 찾는다.
과연 라비다 행성의 식량 부족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지구인과 라비다인, 또 다른 행성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 지은이
이 선
할란 엘리슨에게 환호하며,
우주만화를 쓰고 싶고,
코니 윌리스가 되고 싶고,
알베르 카뮈를 사랑하며
박완서를 존경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보트 위의 세 남자를,
열이 나는 날에는 마의 산을 읽는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 목차
프롤로그--------------- 013
chapter 1. 농사의 전설 ---- 017
chapter 2. (소군) 농사 ---- 097
chapter 3. 데리다 행성 ---- 215
chapter 4. 고노게나오 농사 - 243
chapter 5. 농사쇼-------- 347
에필로그 : 우쿠부지의 여름 -- 370
작가의 말 -------------- 374
추천의 글 -------------- 377
▪ 출판사 서평
사랑스럽고 유쾌한 우주풍자극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처음 작품을 접할 때는 당황스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 흐르듯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작가 특유의 개그코드와 문체에 마음이 동한다. 그때부터는 작품에 훨씬 더 몰입하게 돼 ‘이것의 의미는 뭐지?’, ‘이런 사회문제를 풍자한 것은 없나?’ 라며 찾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작품 곳곳에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가득 묻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따뜻하다. 그들을 결코 동정하지 않으며,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존중하고 있다. 서로에게 편견 없이 대하는 캐릭터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대하는 작가를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하고, 현재의 행복은 물론 미래의 행복까지 바라는 작가의 간절함이 새삼 낯설게도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애정 어린 응원을 받은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의 메인 배경인 라비다 행성은 신비롭고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와는 다른 모습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라비다 행성 안으로 들어가 보면 지구와 다를 것 없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식량 문제, 육식과 채식, 세대 간 갈등, 미디어의 역할,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쟁 등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지구의 현대 사회와 꼭 닮았다.
이러한 라비다 행성의 갈등을 지구인들이 해결한다. 다른 행성으로 납치된 문제투성이 지구인들이 의도를 가지고, 혹은 우연히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 역설적 구조에서 작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풀어낸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기존 가치관을 강화시켜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가치관과 정반대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흘러가듯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떠한 방향으로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매끄럽게 풀어내, 단지 이 작품에서는 이러하니 그것을 즐기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뿐이다.
듣도 보도 못한 쁘띠 SF의 등장!
작가 이선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모던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에서 그 재능을 무한히 펼친 결과 고급스러우면서도 귀여운 SF블랙코미디가 탄생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소하게 벌이는 에피소드, 신비로운 생명체의 귀여운 행동, 뻔뻔하게 느껴질 만큼 자유로운 언어유희, 은유를 바탕으로 한 세밀하고 입체적인 설정과 이야기, 무심하게 아닌 척 하면서 촘촘하게 깔아둔 복선 등 이 작품은 일반적인 SF소설과 다른 결을 지녔다. 정교한 과학적 지식이나 새로운 과학적 상상력 및 신문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등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무척 낯설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장르를 SF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추천할 수 있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SF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고, SF장르에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이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SF시장을 확대시키는 것까지 도전할 만하다.
또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의 공간적 배경인 베델스크 행성계는 꽤 탄탄하고 흥미롭게 구축되어 있어 이를 활용한 연작 시리즈도 기대할 수 있다. 이 작품 이후에 라비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라비다 행성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간 지구인의 이야기, 베델스크 행성계의 각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 독자들도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 보여주는 세계는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지구인들이 라비다 행성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SF시장을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된다.
■ 책 속으로
할머니는 최희지를 등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아직 물기가 덜 마른 차가운 등에 할머니의 폭신한 배를 가져다 대자, 온몸에 온기가 서서히 퍼졌다.
“뭐예요. 왜 안아?”
희지는 할머니를 밀어냈다.
“얘야. 어디를 헤매다 이제야 나를 찾아왔어.”
기댜 할머니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희지는 그 말 한마디에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그녀를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친손녀처럼 안아 주었다. 라비다 행성에서는 손님이 오면 마치 집 나갔던 식구가 돌아온 것처럼 따뜻하게 맞아 주는 풍습이 있었다. - p. 116
희지는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지구의 사람들은 눈으로도 다른 사람을 때릴 수가 있었다. 뾰로통한 입술로도 날카롭게 찌를 수 있었다. 희지는 왜 본인이 이혼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 p. 117
고백하건대, 사실 지구인들은 미치게 귀엽다. 밤엔 대부분 다 잔다. 왜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안 졸려도 밤이 되면, 두 눈을 꼭 감고 침대에 똑바로 누워서 잠이 오기를 기다린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가만히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두근두근, 심장이 두근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아침이 되면 일어난다. 졸려도 굳이 기어이 일어나서 졸음이 남아 있는 눈을 손등으로 비빈다. 지구인들은 정말 다 귀엽다. - 신원 미상인의 <지구 보고서 개정안> 17메장 98미먀절- - p. 118
“언니. 난 농사에 성공하면 다시 지구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것에 기대도 안 해.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선 농사는 실패할 것이 분명하지 않아? 전부 다 세월아, 네월아가 아니라 두월아 이러고 앉아 있잖아.”
김미는 말했다.
“다 좋은데 두월이는 또 뭐니?”
“몰라. 세월보다 느리면 두월이지 뭐. 지금 시간이 세월처럼 흘러가는 게 아니라, 두월처럼 흘러가잖수.” - p. 165
“당신의 작은 위 안에 얼마나 큰 슬픔이 들어 있는 건가요?”
도로마디슈가 물었다.
“슬픔은 위가 아니고 마음에 있어요.”
재이니는 나직이 말했다.
“슬픔이 왜 거기 있어요? 마음은 먹는 겁니다.” - p. 287
▪ 추천평
한국형 뉴웨이브SF의 실험
‘커트 보니것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이런 소설을 썼을까? 2차 세계대전의 아픈 경험들이 쌓이기 전의 청년 보니것이 그 특유의 블랙유머 감각으로 21세기 한국 사회와 대중문화를 재료 삼아 SF를 쓴다면 이 작품과 비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그와 함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화도 자꾸 떠올랐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일독하는 일은 이제껏 접해 왔던 한국산 SF들과는 여러 면에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농업의 위기를 맞은 외계인들이 대책 회의 끝에 지구인 ‘농사 전문가’들을 데려오기로 한다. 이미 그들은 지구의 TV를 몰래 즐기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사실 ‘전원 드라마’였다.
제각기 개성 충만한 외계인과 지구인 캐릭터들(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들 각각의 환경이나 히스토리와 유기적으로 얽힌 다층적인 스토리 전개(설정의 디테일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절하게 배어들어 있는 풍자와 유머 코드(일단 적응되면 흥미진진하다), 씨줄과 날줄로 교직되는 정교한 플롯(복선 찾는 재미가 있다) 등등. 이 작품의 미덕은 꼽으면 꼽을수록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들이 융합되어 발산하는 시너지도 독특한 미학을 이룬다.
제일 먼저 돋보이는 것은 작품의 주인공인 라비다인들과 그들의 행성, 그들의 생태에 대한 설정이다. 작가가 가장 공들인 부분으로 짐작되는데, 사실 SF라면 흔히 기대하게 되는 과학적 정합성을 애초부터 배제하고 철저하게 은유와 풍자로 승부를 건 듯한 태도라서 자칫 SF애호가에 따라서 호오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장르의 드넓은 스펙트럼을 즐기려는 독자라면 충분히 즐기고도 남을 만큼 세심하고 정교하다. 최소한 그 노력만큼은 객관적으로 일정한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외계 생태의 설정에서 교과서적인 치밀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이라면 흔히 프랭크 허버트의 <듄>을 떠올리게 된다. 비록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그런 고전의 품격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작품 자체의 내적 토대가 되는 블랙유머와 풍자의 정서에 충분히 값할 만한 수준에는 오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성취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이따금 등장하는 우리말 언어유희(pun)가 꽤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타율이 준수한 편이라서 작가의 이 분야 센스 내공은 단기간에 쌓인 것이 아닌 듯하다. 이를테면 멍한 아름다움을 ‘멍미’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말 속어가 갖는 중의적 페이소스를 적절하게 구사한 재미있는 예이다.
서구SF에서는 1960년대 즈음부터 ‘뉴웨이브SF’라고 하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그전까지는 과학기술적 묘사의 엄정함을 강조하는 하드SF적 정서가 기본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뉴웨이브SF는 마치 그에 반기를 드는 듯한 형이상학적, 추상적 관념의 묘사가 특징이었다. 베트남전쟁 반대와 히피 운동 등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짚는 분석과 더불어 기존 SF 자체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실험적, 파격적인 시도의 성격도 컸다. SF를 ‘Speculative Fiction(사색소설)’이라고 새롭게 풀이하자는 제안이 꽤 유효했을 정도였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읽으면서 문득 한국형 뉴웨이브SF라면 이와 비슷한 느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와 연관 지어 흥미롭게 분석해볼 만한 텍스트로 꼽힐 자격이 있다.
그동안 여러 SF공모전 심사를 맡아 오면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과 유사한 스타일의 경쾌하고 신랄한 블랙 유머 SF들을 더러 접해 왔지만, 대부분 아쉬움이 컸었다. 게다가 그런 스타일을 중단편도 아닌 장편 스케일에 걸맞게 구사한 경우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과 같은 작품이 더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SF의 창작 역량이 더 넓고 깊어질 것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화씨 451>, <라마와의 랑데뷰>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