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2019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북 투 필름’ 피칭작 및 선정작 수록!
장르 작가 8인이 모여 만들어낸 캐비넷 첫 번째 앤솔러지!
하루 24시간 안에 시작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일주일 동안 모아서 구성한 장르 단편집.
시간적 특성 외에도 또 다른 앤솔러지의 공통점을 만들고자, 공간적 특성을 찾았다.
매일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방문할 수 있는 편의점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적 배경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기묘한 편의점, 어위크.
어위크를 통해 벌어지는 7일 야화.
현금수송차량을 털 계획을 세웠던 20대 청년 중식, 현우, 태영은 계획과 다른 상황들에 당황한다.
왜 차에 타고 있던 직원이 네 명인가? 끈이 세 명 묶을 양밖에 없는데.
왜 그 나머지 한 직원은 총을 잘 쏘는가? 방탄복도 안 입었는데.
왜 차가 스틱인가? 오토만 몰 줄 아는데.
왜 현금 다발은 이다지도 무거운가? 직접 들고튀어야만 하는데.
결국 세 사람은 수많은 목격자와 증거 영상을 남기며 도망간다. 그런데 도망가던 중, 태영이 총에 맞고 만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태영 때문에 현우와 중식은 초조하다. 어디에 숨어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밝게 빛나는 편의점을 발견한다. 20년 넘게 살았던 이 동네, 분명 어제는 없었던 이 편의점이 어디서 뚝 떨어진 건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도망칠 곳은 이곳뿐이다.
졸지에 세 사람은 편의점에서 알바생을 대상으로 인질극까지 벌인다. 그런데 이 알바생, 인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차분하고 수상하다.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목격하고 겪었다는 일곱 개의 이야기를……
▪ 줄거리
일요일. 「대화재의 비밀」 - 정명섭
며칠 전, 조선의 궁궐이 커다란 불길에 휩싸였다. 평리원 검사, 이준은 불타버린 궁궐을 보며 답답해한다. 이런 그에게 손탁은 화재의 비밀을 밝혀 달라 요청한다. 화재의 원인도 불분명하고, 불을 진화하러 왔던 일본인들의 행태도 수상했다며.
이준은 손탁에게 소개 받은 통역자이자 수사 파트너인 박에스더와 함께 사람들을 만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증언 속에서 이준은 사건의 가닥을 점차 잡아가는데, 뚜렷한 물증이 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월요일. 「옆집에 킬러가 산다」 - 김성희
킬러인 ‘나’는 산업 스파이 살해 의뢰를 받고, 그의 옆집으로 이사를 간다. 숨 참기, 흔적 지우기에서 1등을 일삼던 ‘나’는 정체를 들키지 않는 데에 자신 있다. 그런데 이사 첫 날부터 ‘조용히 좀 하라’는 경고 쪽지가 가득 붙는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아파트 때문에 ‘나’도 타겟, 위․아래, 대각선까지 이웃들의 각종 소음에 시달린다. 마침내 의뢰자로부터 살해 신호를 받은 ‘나’는 시끄러운 이웃들을 모두 처리해나간다.
화요일. 「당신의 여덟 번째 삶」 - 노희준
갑자기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남자가 ‘나’의 앞에 나타난다. ‘나’는 철통 보안 시스템을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건지 의아하지만, AI에게 곧 죽을 운명인 복제인간에게 관심 없다. 하지만 이 의문의 남자는 자신이 복제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나’가 만들었던 타임머신을 통해 이미 죽은 아내, 클라라를 살릴 수 있다며 설득하기 시작한다.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없는 ‘나’는 단호하다. 이 대화의 끝이 향하는 방향은?
수요일. 「박 과장 죽이기」 - 신원섭
수진은 민에게 남편이 죽으면 1억의 보험금이 나온다며, 그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민은 곧 있을 시운전 현장에서 죽이자며 농담처럼 대꾸한다.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수진.
출장 당일, 연이은 실수와 박 과장과의 싸움 등, 수진은 평소와 다르다. 민은 모든 것들이 수진의 계획인가 싶다. 민은 자신이 무엇을 할까 묻지만 수진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죽이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만의 착각이었나? 혼란스러운 민 앞에 수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목요일. 「러닝패밀리」 - 강지영
전국을 휩쓸고 있는 의문의 모바일 게임이 있다. 선택한 캐릭터를 죽이지 않고 무사히 탈출시키면 된다는 ‘러닝패밀리’. 하지만 만약 캐릭터가 죽을 경우,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실종된다는 소문이 떠돈다.
그러던 와중, 다영은 며칠 째 등교하지 않는 학생, 선우의 집에 방문한다. 다영은 그곳에서 의문의 구멍에 팔 한쪽이 낀 상태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선우를 발견한다. 다영은 선우를 빼내려 하지만, 구멍은 더 깊고 세게 선우를 옥죌 뿐이다.
금요일. 「아비」 - 소현수
보영은 남편, 병철이 음주운전으로 어린 아이를 치여 죽인 뒤부터 병철이 악귀에게 죽임을 당하는 악몽을 꾼다. 그런 보영 앞에 죽은 아이의 이모, 호희가 나타난다. 호희는 보영의 악몽이 죽은 아이의 할머니이자, 자신의 신어머니인 태령의 저주 때문이라 말해준다.
보영은 어린 아이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병철의 저주를 풀고 싶다는 생각에 호희의 지시 아래, 지옥 길로 들어간다.
토요일. 「씨우세클럽」 - 정해연
편의점 계열사 그룹 백 회장이 갑질, 성추행 사건 등을 일으키면서 대중들은 어위크 편의점을 불매한다. 연서를 포함한 5명의 편의점주는 급감하는 매출에 대비하고자 씨우세클럽을 만든다. 씨우세클럽은 백 회장의 거짓 미담을 만들고, 인터넷에 퍼트리면서 불매 운동을 그치게 하려 한다. 서서히 효과를 보이지만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멀었다. 그런데 백 회장이 비밀리에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이 있다며 씨우세클럽에 연락을 해온다. 자신이 인기 연예인에게 선물했던 목걸이를 다시 훔쳐달라는데?
▪ 지은이
강지영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장편 『심여사는 킬러』, 『엘자의 하인』, 『프랑켄슈타인 가족』,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페로몬부티크와 웹툰 스틸레토』 등을 집필했다.
유령과 뱀파이어, 킬러, 좀비, 그리고 수다스러운 비밀과 기품 있는 거짓말을 좋아한다.
김성희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작가 데뷔프로그램, 콘텐츠 원작소설 창작과정 선정, 2014년 및 2015년 대한민국 스토리 어워드&페스티벌(SA&F) 피칭, 제4회 과학 및 액션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 수상. 장편소설 『마이 미스 미세스』, 앤솔로지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첫사랑 위원회』, 『나의 서울대 합격 수기』를 출간했다.
노희준
2006, 제 2회 문예중앙소설상. 범죄역사스릴러 『킬러리스트』
2016, 한국 SF 어워드 대상. 2017 황순원 소나기 마을 문학상. SF, 『깊은 바다 속 파랑』
두 편의 창작집과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소현수
장편소설 『에덴』, 『괴물』, 『프린테라』, 단편집 『히키코모리 카페』, 어린이 괴담집 『신비아파트 오싹오싹 무서운 이야기』 등을 펴냈다. 방송작가로서도 활동, <바람의 집>과 <제노사이드-학살의 기억들>이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 방송되었다.
신원섭
글 쓰는 엔지니어. 2018년 장편소설 『짐승』 출간 및 영화화 진행 중. 단편 앤솔로지 『카페 홈즈에 가면?』, 『괴이 도시』 등에 작품을 실었다.
전건우
소설가. 장편소설 『밤의 이야기꾼들』, 『소용돌이』, 『고시원 기담』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단편집 『한밤중에 나 홀로』를 펴냈다. 그 외에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해오고 있다.
정명섭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한성 프리메이슨』, 『유품 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미스 손탁』, 『살아서 가야 한다』 등이 있다.
정해연
2013년 장편소설 『더블』을 발표하며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악의-죽은 자의 일기』, 『지금 죽으러 갑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지금 죽으러 갑니다』, 『유괴의 날』을 발표했고, 앤솔로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그것들』, 『카페 홈즈에 가면?』에 참여했다.
▪ 목차
프롤로그 | 007 |
SUN. 대화재의 비밀_정명섭 | 041 |
MON. 옆집에 킬러가 산다_김성희 | 095 |
TUE. 당신의 여덟 번째 삶_노희준 | 127 |
WED. 박 과장 죽이기_신원섭 | 165 |
THU. 러닝패밀리_강지영 | 211 |
FRI. 아비_소현수 | 249 |
SAT. 씨우세클럽_정해연 | 309 |
에필로그 | 364 |
작가의 말 | 374 |
▪ 출판사 서평
프롤로그 & 에필로그 - 전건우
어위크의 시작과 끝에 위치하여 어위크의 세계관을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일곱 가지의 이야기 모두 장르도 다르고, 메인 소재도 달라 자칫 흩어지기 쉬운 작품들을 한데 모은다. 게다가 이 자체로서의 재미와 완결성을 갖고 있어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의 역할을 뛰어 넘는다. 에필로그를 보고 나면 작품집에서 보인 것보다 더 확장된 세계관으로 독자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토록 동시에 여러 효과를 보인 작가의 탁월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낸다.
「대화재의 비밀」 - 정명섭
짧은 분량 안에서 자연스럽게 툭 서술되어 있는 듯 하지만, 뜯어보면 무척이나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수사를 하는 이준과 박에스더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억압 속에서 피어오르는 분노와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대항하며 싸워 온 선조들에 대한 감사함이 복합적으로 얽히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더 이준이 사건을 파헤치는 것에 몰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액션에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옆집에 킬러가 산다」 - 김성희
누구보다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울 수 있고,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하는 킬러.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아파트. 이 아이러니한 설정은 작가의 손에서 블랙코미디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구성 또한 독특하여, 한 줄 한 줄 읽어나갈수록 점차 빠져 들어간다. 이 주인공이 우리 주변의 아파트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층간 소음이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를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작가의 도발적인 상상력이 반갑기만 하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사람과 감정에 대한 작가만의 감성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당신의 여덟 번째 삶」 - 노희준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자신과 똑같은 남자에 대해 의문을 품는 ‘나’처럼 독자들도 저 남자는 누구며, 이들의 관계는 무엇인지 호기심을 갖고 따라간다. 작품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두 캐릭터의 대화들이다. 대화 속에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이 드러나고, 이야기가 진행되며, 퍼즐 조각들이 맞춰진다. 그 순간의 재미와 깨달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과연 앞으로는 어떠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인지 상상하게 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향유로서의 의의를 넘어선 이 작품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간다.
「박 과장 죽이기」 - 신원섭
제목은 물론 시작부터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들어가는 작품을 보니, 괜스레 정말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심정은 극 중 화자와 매우 유사하여, 감정이입이 훨씬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과연 어떻게 죽일까, 피해자는 과연 이 사실을 알아차릴까? 궁금증이 커져만 갈 때,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먼저 죽이자고 한 사람 반응이 너무나 이상하다는 것. 이때부터 새로운 국면에 이른다. 과연 정말 죽이기로 합의했던 것이 맞는가?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는가?
또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는 화자의 심리 묘사는 거침없고 당당하여,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경고를 던지는 듯 하기도 하다.
「러닝패밀리」 - 강지영
사람을 집어 삼키는 구멍, 모바일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현실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괴담은 그 하나만으로도 힘을 갖는 설정이다. 이 두 가지가 한 작품에서 유기적으로 엮이게 되면서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정말 있을 법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며 더 몰입된다.
동시에 이 환상적인 설정과 대비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이야기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과연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고, 반성하게 한다.
「아비」 - 소현수
가까운 사람이 죽고 또 죽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이 생각은 계속 든다. 그러면서 보영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어떠한 입장으로 보더라도 아비지옥에서의 잔혹한 살해 모습은 소름을 오소소 돋게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과응보. 이는 과연 어디까지 적용 가능한 것인지, 사적 복수의 타당성이나 범위 등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고려해봄직 하다.
「씨우세클럽」 - 정해연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 코믹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개 속에는 사회적 문제가 여럿 숨어 있다. 갑질 문화, 회장으로 인한 프랜차이즈의 피해, 가맹본부와의 계약으로 인해 손님이 없어도 무조건 24시간 영업해야만 하는 편의점, 제한적인 정보의 제공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중들의 반응 등.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는 단순한 코믹한 미스터리 작품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묵직한 주제 의식을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면서 유쾌하게 다루고 있어, 독자들은 부담스럽지 않게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대중 문학 작품의 미학이 아닐까?
■ 책 속으로
그것은 편의점 간판이었다. 구질구질한 골목 한 쪽 구석에 자리한 편의점은 허허벌판에서 홀로 빛나는 놀이공원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살아온 동네, 그것도 늘 다니던 골목이었지만 편의점을 본 건 처음이었다. - p. 21 | 프롤로그
진짜 뒷문인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해봤지만 그 거리는 현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동네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도무지 이 세상의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면서도 기괴했다. 현우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후 다시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똑똑 노크를 했다. 그런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컴컴한 창고가 거기 있었다. 과자며 음료수 박스가 잔뜩 쌓인 전형적인 편의점 창고였다. - p. 36 | 프롤로그
“그래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마자 불이 났느냐?”
“그,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잠시 측간에 가느라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불이 번졌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비웠느냐?”
이준의 질문에 한치형은 마른 침을 삼켰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안 됐을 겁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짧은 시간인데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났다는 게 믿을 수가 없군.” - p. 68-69 | 대화재의 비밀
그런 제가 무료로 이웃과 교류하게 된 것은, 물론 이 아파트의 놀라운 방음 수준 덕분이었습니다. 방구석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상하좌우는 물론 대각선 방향까지, 저희 집 기준으로 10여 가구 정도는 대략적인 생활 패턴을 알 수 있고, 정확히 8가구는 이웃을 대신해 그들의 은밀한 비밀 일기장을 쓸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 p. 100 | 옆집에 킬러가 산다
나와 똑같은 DNA를 갖고 있으면 AI가 못 죽일 것 같나? 그런데 어쩌지? 나의 AI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네. 하나의 우주에 두 명의 내가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확률적 사고를 하는 것도 똑같지. 나라는 확률이 조금만 낮아도 그 사람을 죽일 거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 p. 131 | 당신의 여덟 번째 삶
물론 민은 이 사람들이 바쁠 줄 알고 있었다. 날을 오늘로 잡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준공검사가 끝나면 모두의 관심이 FGC에 쏠릴 것이고, 보는 눈이 많아지면 박 과장을 죽이기가 어려울 테니까. 민은 최대한 수진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바짝바짝 애가 탔다. - p. 178 | 박 과장 죽이기
그러는 사이 구멍의 근육이 조금 더 벌어지며 할머니를 턱밑까지 집어삼켰다.
“할머니, 가지마아!”
선우가 온힘을 다해 할머니의 머리를 끌어안아보았지만, 구멍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의 주름진 입술과 뺨, 주저앉은 코와 늘어진 눈꺼풀이 물에 녹듯 서서히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 p. 232 | 러닝패밀리
순간, 홱 까만 그림자가 보영의 눈앞을 스쳤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나왔다! 그 여자, 꿈속의 그 여자다. 호희의 신어머니, 악귀로 환생한 태령.
태령이 풀어헤친 백발을 휘날리며 병철을 향해 달린다. 쏜살같이 다리를 건넌다. 병철은 혼비백산 골목을 나와 뛰지만, 태령은 병철보다 훨씬 빠르다. 이내 병철을 따라잡는다. 손을 홱 휘젓자 병철의 등짝에서 피가 튄다. 병철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군다. 곧바로 태령이 덮친다. - p. 283 | 아비
그날 검색어 1위에 오늘 뉴스기사의 헤드라인은 그림같이 멋지게 빠졌고, 슬슬 어위크 편의점에도 파리가 아닌 손님들이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지나지 않았다. 저 백광우는 언제고 또 사고를 칠 것이다, 라는 의심을 놓지 않은 유연서에게는 큰 한방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백광우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은 의외였다.
“이체리한테 준 목걸이가 있어. 시가 3억짜리. 이번 주말, 내 별장에 이체리를 초대할거야. 그때 그 목걸이를 훔쳐내 줘.”
“뭔 미친 소리고?” - p. 327 | 씨우세클럽
▪ 책 소개
2019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북 투 필름’ 피칭작 및 선정작 수록!
장르 작가 8인이 모여 만들어낸 캐비넷 첫 번째 앤솔러지!
하루 24시간 안에 시작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일주일 동안 모아서 구성한 장르 단편집.
시간적 특성 외에도 또 다른 앤솔러지의 공통점을 만들고자, 공간적 특성을 찾았다.
매일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방문할 수 있는 편의점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적 배경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기묘한 편의점, 어위크.
어위크를 통해 벌어지는 7일 야화.
현금수송차량을 털 계획을 세웠던 20대 청년 중식, 현우, 태영은 계획과 다른 상황들에 당황한다.
왜 차에 타고 있던 직원이 네 명인가? 끈이 세 명 묶을 양밖에 없는데.
왜 그 나머지 한 직원은 총을 잘 쏘는가? 방탄복도 안 입었는데.
왜 차가 스틱인가? 오토만 몰 줄 아는데.
왜 현금 다발은 이다지도 무거운가? 직접 들고튀어야만 하는데.
결국 세 사람은 수많은 목격자와 증거 영상을 남기며 도망간다. 그런데 도망가던 중, 태영이 총에 맞고 만다.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는 태영 때문에 현우와 중식은 초조하다. 어디에 숨어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밝게 빛나는 편의점을 발견한다. 20년 넘게 살았던 이 동네, 분명 어제는 없었던 이 편의점이 어디서 뚝 떨어진 건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도망칠 곳은 이곳뿐이다.
졸지에 세 사람은 편의점에서 알바생을 대상으로 인질극까지 벌인다. 그런데 이 알바생, 인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차분하고 수상하다.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목격하고 겪었다는 일곱 개의 이야기를……
▪ 줄거리
일요일. 「대화재의 비밀」 - 정명섭
며칠 전, 조선의 궁궐이 커다란 불길에 휩싸였다. 평리원 검사, 이준은 불타버린 궁궐을 보며 답답해한다. 이런 그에게 손탁은 화재의 비밀을 밝혀 달라 요청한다. 화재의 원인도 불분명하고, 불을 진화하러 왔던 일본인들의 행태도 수상했다며.
이준은 손탁에게 소개 받은 통역자이자 수사 파트너인 박에스더와 함께 사람들을 만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증언 속에서 이준은 사건의 가닥을 점차 잡아가는데, 뚜렷한 물증이 없어 난감하기만 하다.
월요일. 「옆집에 킬러가 산다」 - 김성희
킬러인 ‘나’는 산업 스파이 살해 의뢰를 받고, 그의 옆집으로 이사를 간다. 숨 참기, 흔적 지우기에서 1등을 일삼던 ‘나’는 정체를 들키지 않는 데에 자신 있다. 그런데 이사 첫 날부터 ‘조용히 좀 하라’는 경고 쪽지가 가득 붙는다.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아파트 때문에 ‘나’도 타겟, 위․아래, 대각선까지 이웃들의 각종 소음에 시달린다. 마침내 의뢰자로부터 살해 신호를 받은 ‘나’는 시끄러운 이웃들을 모두 처리해나간다.
화요일. 「당신의 여덟 번째 삶」 - 노희준
갑자기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남자가 ‘나’의 앞에 나타난다. ‘나’는 철통 보안 시스템을 어떻게 뚫고 들어온 건지 의아하지만, AI에게 곧 죽을 운명인 복제인간에게 관심 없다. 하지만 이 의문의 남자는 자신이 복제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나’가 만들었던 타임머신을 통해 이미 죽은 아내, 클라라를 살릴 수 있다며 설득하기 시작한다. 남자의 말을 믿을 수 없는 ‘나’는 단호하다. 이 대화의 끝이 향하는 방향은?
수요일. 「박 과장 죽이기」 - 신원섭
수진은 민에게 남편이 죽으면 1억의 보험금이 나온다며, 그를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민은 곧 있을 시운전 현장에서 죽이자며 농담처럼 대꾸한다.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수진.
출장 당일, 연이은 실수와 박 과장과의 싸움 등, 수진은 평소와 다르다. 민은 모든 것들이 수진의 계획인가 싶다. 민은 자신이 무엇을 할까 묻지만 수진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죽이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나만의 착각이었나? 혼란스러운 민 앞에 수진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목요일. 「러닝패밀리」 - 강지영
전국을 휩쓸고 있는 의문의 모바일 게임이 있다. 선택한 캐릭터를 죽이지 않고 무사히 탈출시키면 된다는 ‘러닝패밀리’. 하지만 만약 캐릭터가 죽을 경우,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실종된다는 소문이 떠돈다.
그러던 와중, 다영은 며칠 째 등교하지 않는 학생, 선우의 집에 방문한다. 다영은 그곳에서 의문의 구멍에 팔 한쪽이 낀 상태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선우를 발견한다. 다영은 선우를 빼내려 하지만, 구멍은 더 깊고 세게 선우를 옥죌 뿐이다.
금요일. 「아비」 - 소현수
보영은 남편, 병철이 음주운전으로 어린 아이를 치여 죽인 뒤부터 병철이 악귀에게 죽임을 당하는 악몽을 꾼다. 그런 보영 앞에 죽은 아이의 이모, 호희가 나타난다. 호희는 보영의 악몽이 죽은 아이의 할머니이자, 자신의 신어머니인 태령의 저주 때문이라 말해준다.
보영은 어린 아이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병철의 저주를 풀고 싶다는 생각에 호희의 지시 아래, 지옥 길로 들어간다.
토요일. 「씨우세클럽」 - 정해연
편의점 계열사 그룹 백 회장이 갑질, 성추행 사건 등을 일으키면서 대중들은 어위크 편의점을 불매한다. 연서를 포함한 5명의 편의점주는 급감하는 매출에 대비하고자 씨우세클럽을 만든다. 씨우세클럽은 백 회장의 거짓 미담을 만들고, 인터넷에 퍼트리면서 불매 운동을 그치게 하려 한다. 서서히 효과를 보이지만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멀었다. 그런데 백 회장이 비밀리에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이 있다며 씨우세클럽에 연락을 해온다. 자신이 인기 연예인에게 선물했던 목걸이를 다시 훔쳐달라는데?
▪ 지은이
강지영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장편 『심여사는 킬러』, 『엘자의 하인』, 『프랑켄슈타인 가족』,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페로몬부티크와 웹툰 스틸레토』 등을 집필했다.
유령과 뱀파이어, 킬러, 좀비, 그리고 수다스러운 비밀과 기품 있는 거짓말을 좋아한다.
김성희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작가 데뷔프로그램, 콘텐츠 원작소설 창작과정 선정, 2014년 및 2015년 대한민국 스토리 어워드&페스티벌(SA&F) 피칭, 제4회 과학 및 액션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 수상. 장편소설 『마이 미스 미세스』, 앤솔로지 『당신이 죽어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첫사랑 위원회』, 『나의 서울대 합격 수기』를 출간했다.
노희준
2006, 제 2회 문예중앙소설상. 범죄역사스릴러 『킬러리스트』
2016, 한국 SF 어워드 대상. 2017 황순원 소나기 마을 문학상. SF, 『깊은 바다 속 파랑』
두 편의 창작집과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소현수
장편소설 『에덴』, 『괴물』, 『프린테라』, 단편집 『히키코모리 카페』, 어린이 괴담집 『신비아파트 오싹오싹 무서운 이야기』 등을 펴냈다. 방송작가로서도 활동, <바람의 집>과 <제노사이드-학살의 기억들>이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 방송되었다.
신원섭
글 쓰는 엔지니어. 2018년 장편소설 『짐승』 출간 및 영화화 진행 중. 단편 앤솔로지 『카페 홈즈에 가면?』, 『괴이 도시』 등에 작품을 실었다.
전건우
소설가. 장편소설 『밤의 이야기꾼들』, 『소용돌이』, 『고시원 기담』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단편집 『한밤중에 나 홀로』를 펴냈다. 그 외에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해오고 있다.
정명섭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과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한성 프리메이슨』, 『유품 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미스 손탁』, 『살아서 가야 한다』 등이 있다.
정해연
2013년 장편소설 『더블』을 발표하며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악의-죽은 자의 일기』, 『지금 죽으러 갑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지금 죽으러 갑니다』, 『유괴의 날』을 발표했고, 앤솔로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그것들』, 『카페 홈즈에 가면?』에 참여했다.
▪ 목차
프롤로그 | 007 |
SUN. 대화재의 비밀_정명섭 | 041 |
MON. 옆집에 킬러가 산다_김성희 | 095 |
TUE. 당신의 여덟 번째 삶_노희준 | 127 |
WED. 박 과장 죽이기_신원섭 | 165 |
THU. 러닝패밀리_강지영 | 211 |
FRI. 아비_소현수 | 249 |
SAT. 씨우세클럽_정해연 | 309 |
에필로그 | 364 |
작가의 말 | 374 |
▪ 출판사 서평
프롤로그 & 에필로그 - 전건우
어위크의 시작과 끝에 위치하여 어위크의 세계관을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일곱 가지의 이야기 모두 장르도 다르고, 메인 소재도 달라 자칫 흩어지기 쉬운 작품들을 한데 모은다. 게다가 이 자체로서의 재미와 완결성을 갖고 있어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의 역할을 뛰어 넘는다. 에필로그를 보고 나면 작품집에서 보인 것보다 더 확장된 세계관으로 독자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토록 동시에 여러 효과를 보인 작가의 탁월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낸다.
「대화재의 비밀」 - 정명섭
짧은 분량 안에서 자연스럽게 툭 서술되어 있는 듯 하지만, 뜯어보면 무척이나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수사를 하는 이준과 박에스더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억압 속에서 피어오르는 분노와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대항하며 싸워 온 선조들에 대한 감사함이 복합적으로 얽히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더 이준이 사건을 파헤치는 것에 몰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액션에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옆집에 킬러가 산다」 - 김성희
누구보다 완벽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울 수 있고, 정체를 들키지 말아야 하는 킬러.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아파트. 이 아이러니한 설정은 작가의 손에서 블랙코미디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구성 또한 독특하여, 한 줄 한 줄 읽어나갈수록 점차 빠져 들어간다. 이 주인공이 우리 주변의 아파트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층간 소음이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를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작가의 도발적인 상상력이 반갑기만 하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사람과 감정에 대한 작가만의 감성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당신의 여덟 번째 삶」 - 노희준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자신과 똑같은 남자에 대해 의문을 품는 ‘나’처럼 독자들도 저 남자는 누구며, 이들의 관계는 무엇인지 호기심을 갖고 따라간다. 작품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두 캐릭터의 대화들이다. 대화 속에서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이 드러나고, 이야기가 진행되며, 퍼즐 조각들이 맞춰진다. 그 순간의 재미와 깨달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과연 앞으로는 어떠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인지 상상하게 하는 재미도 선사한다. 향유로서의 의의를 넘어선 이 작품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간다.
「박 과장 죽이기」 - 신원섭
제목은 물론 시작부터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들어가는 작품을 보니, 괜스레 정말 이래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심정은 극 중 화자와 매우 유사하여, 감정이입이 훨씬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과연 어떻게 죽일까, 피해자는 과연 이 사실을 알아차릴까? 궁금증이 커져만 갈 때,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먼저 죽이자고 한 사람 반응이 너무나 이상하다는 것. 이때부터 새로운 국면에 이른다. 과연 정말 죽이기로 합의했던 것이 맞는가?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는가?
또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는 화자의 심리 묘사는 거침없고 당당하여,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경고를 던지는 듯 하기도 하다.
「러닝패밀리」 - 강지영
사람을 집어 삼키는 구멍, 모바일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으면 현실에서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괴담은 그 하나만으로도 힘을 갖는 설정이다. 이 두 가지가 한 작품에서 유기적으로 엮이게 되면서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정말 있을 법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며 더 몰입된다.
동시에 이 환상적인 설정과 대비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과 이야기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과연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고, 반성하게 한다.
「아비」 - 소현수
가까운 사람이 죽고 또 죽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어떤 심정일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이 생각은 계속 든다. 그러면서 보영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어떠한 입장으로 보더라도 아비지옥에서의 잔혹한 살해 모습은 소름을 오소소 돋게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인과응보. 이는 과연 어디까지 적용 가능한 것인지, 사적 복수의 타당성이나 범위 등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고려해봄직 하다.
「씨우세클럽」 - 정해연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그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 코믹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개 속에는 사회적 문제가 여럿 숨어 있다. 갑질 문화, 회장으로 인한 프랜차이즈의 피해, 가맹본부와의 계약으로 인해 손님이 없어도 무조건 24시간 영업해야만 하는 편의점, 제한적인 정보의 제공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중들의 반응 등.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는 단순한 코믹한 미스터리 작품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묵직한 주제 의식을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면서 유쾌하게 다루고 있어, 독자들은 부담스럽지 않게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대중 문학 작품의 미학이 아닐까?
■ 책 속으로
그것은 편의점 간판이었다. 구질구질한 골목 한 쪽 구석에 자리한 편의점은 허허벌판에서 홀로 빛나는 놀이공원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살아온 동네, 그것도 늘 다니던 골목이었지만 편의점을 본 건 처음이었다. - p. 21 | 프롤로그
진짜 뒷문인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해봤지만 그 거리는 현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동네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도무지 이 세상의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면서도 기괴했다. 현우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후 다시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똑똑 노크를 했다. 그런 뒤 천천히 문을 열었다.
컴컴한 창고가 거기 있었다. 과자며 음료수 박스가 잔뜩 쌓인 전형적인 편의점 창고였다. - p. 36 | 프롤로그
“그래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마자 불이 났느냐?”
“그,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잠시 측간에 가느라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이에 불이 번졌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비웠느냐?”
이준의 질문에 한치형은 마른 침을 삼켰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안 됐을 겁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짧은 시간인데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났다는 게 믿을 수가 없군.” - p. 68-69 | 대화재의 비밀
그런 제가 무료로 이웃과 교류하게 된 것은, 물론 이 아파트의 놀라운 방음 수준 덕분이었습니다. 방구석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상하좌우는 물론 대각선 방향까지, 저희 집 기준으로 10여 가구 정도는 대략적인 생활 패턴을 알 수 있고, 정확히 8가구는 이웃을 대신해 그들의 은밀한 비밀 일기장을 쓸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 p. 100 | 옆집에 킬러가 산다
나와 똑같은 DNA를 갖고 있으면 AI가 못 죽일 것 같나? 그런데 어쩌지? 나의 AI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네. 하나의 우주에 두 명의 내가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확률적 사고를 하는 것도 똑같지. 나라는 확률이 조금만 낮아도 그 사람을 죽일 거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 p. 131 | 당신의 여덟 번째 삶
물론 민은 이 사람들이 바쁠 줄 알고 있었다. 날을 오늘로 잡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준공검사가 끝나면 모두의 관심이 FGC에 쏠릴 것이고, 보는 눈이 많아지면 박 과장을 죽이기가 어려울 테니까. 민은 최대한 수진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바짝바짝 애가 탔다. - p. 178 | 박 과장 죽이기
그러는 사이 구멍의 근육이 조금 더 벌어지며 할머니를 턱밑까지 집어삼켰다.
“할머니, 가지마아!”
선우가 온힘을 다해 할머니의 머리를 끌어안아보았지만, 구멍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의 주름진 입술과 뺨, 주저앉은 코와 늘어진 눈꺼풀이 물에 녹듯 서서히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 p. 232 | 러닝패밀리
순간, 홱 까만 그림자가 보영의 눈앞을 스쳤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나왔다! 그 여자, 꿈속의 그 여자다. 호희의 신어머니, 악귀로 환생한 태령.
태령이 풀어헤친 백발을 휘날리며 병철을 향해 달린다. 쏜살같이 다리를 건넌다. 병철은 혼비백산 골목을 나와 뛰지만, 태령은 병철보다 훨씬 빠르다. 이내 병철을 따라잡는다. 손을 홱 휘젓자 병철의 등짝에서 피가 튄다. 병철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군다. 곧바로 태령이 덮친다. - p. 283 | 아비
그날 검색어 1위에 오늘 뉴스기사의 헤드라인은 그림같이 멋지게 빠졌고, 슬슬 어위크 편의점에도 파리가 아닌 손님들이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지나지 않았다. 저 백광우는 언제고 또 사고를 칠 것이다, 라는 의심을 놓지 않은 유연서에게는 큰 한방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 백광우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은 의외였다.
“이체리한테 준 목걸이가 있어. 시가 3억짜리. 이번 주말, 내 별장에 이체리를 초대할거야. 그때 그 목걸이를 훔쳐내 줘.”
“뭔 미친 소리고?” - p. 327 | 씨우세클럽